화가 손상기를 기리며
예술혼을 불사르고 요절한 여수출신 화가손상기를 기리며
인물 다큐멘터리 TV프로그램 '시대와 인물'담당 PD로 일하던 2000년도에 화가 손상기의 삶과 예술 세계를 제작 방영한적이 있다. 화가 손상기는 신체적 불구를 극복하고 자기만의 독특한 미술세계를 보여준 여수출신의 서양화가이다. 어부의 아들로 태어나 이른바 '곱추'라고 불리는 병을 앓으면서도 자기만의 세계를 그림으로 표현한 많은 미술 작품과 글들을 남기고 고인이 된 분이다. 안타깝게도 그는 작품활동의 절정기에 이르러 화단의 주목을 받던 1988년 서른 아홉에 생을 마쳤다.
나는 그의 자료를 조사하면서 두가지에 놀랐다. 우선 그의 그림이 주는 느낌과 많은 작품수에 놀랐다. 그림에서 발하고 있는 어두운 톤의 강인함과 또렷하고 확실한 어조로 말하고 있는 그의 조형언어 때문이었다. 그의 언어는 자신의 어두운 삶에 대한 고통, 애절함, 고독을 말해주고 있었으며, 동시에 거기에는 역설적이게도 희망의 메시지가 강하게 묻어 있었다. 그리고 짧은 기간 활동했음에도 그의 작품들이 많이 남아 있다는 점을 들 수 있다.
두번째로 놀란 것은 그가 남긴 메모들이다. 프로그램을 제작하면서 유족들이 보관하고 있는 자료에서 화가이지만 어느 문학인 못지 않은 수준높은 글을 읽어보고 놀라지 않을 수가 없었다. 자신의 예술관에 대한 피력에서부터 연인과의 개인적인 서신, 그리고 시와 희곡 작품에 이르기까지 방대한 양의 메모를 볼 수 있었다.
화가 손상기가 그림외에 이렇게 많은 글들을 남기게 된 데는 그의 문학적 기질과 광범위한 독서에서 비롯되었다. 그를 가르친 여수상고 교사와 원광대 교수들, 함께 공부했던 친구들의 증언에 의하면 독서광이었으며 다양한 분야에 대한 폭넓은 그의 독서량은 동급생들이 따라올수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는 메모에서도 밝히고 있다.
' 서글프면 그림을 그리고, 고독을 느끼면 글을 읽으면서 생을 산다'
그림으로 그린 자화상도 자신을 잘 표현하였지만 시어로 묘사한 자화상도 있다.
'명산의 바위처럼 위용있게 돌출된 가슴뼈, 외봉 낙타등처럼 생긴 등, 5척에도 못미치는 키'
고인이 된 여수출신 화가중에 손상기 만큼 주목을 받은 작가는 거의 없다. 죽은 후에만 여러차례 유작전이 열렸으며 그의 예술론과 천재성을 기록한 책들도 여러권 출판되었다. 일대기를 다룬 평전에서부터 그의 글을 모은 책과 여러권의 화집, 그림엽서책외에도 그에 관한 특집 기사가 실린 미술잡지 등이 여러권이 있다. 사후에까지 이 정도의 관심을 받는 여수 출신 미술가를 아직 보지 못했다. 그러나 정작 그의 고향 여수에서는 죽은지 18년이 흐르는 동안 세월과 함께 점차 잊혀져가고 있어 아쉬운 상황이다.
요사이 여수에서는 그를 기리는 사람들이 매월 한차례씩 모임을 갖고 기념사업들을 차근차근 펼쳐 나가려고 준비중에 있다. 이른바 ' 화가 손상기 기념사업회' 사람들이다. 손상기를 기리고자하는 여수의 미술인이 주축이 된 문화 예술관계자와 그를 아는 일반 시민들이 사업회 회원들이다. 화가 손상기 기념사업회는 우선 심포지엄과 전시회를 기획하고 있다. 모임의 활동에 시민들의 많은 관심과 후원이 있었으면 한다. 아울러 여수시민들은 손쉬운 방법으로 인터넷에서 '손상기'를 검색해 보고 , 많은 시민들이 그를 알았으면 좋겠다, 세계적인 구겐하임 미술관 유치도 내 지역의 미술가를 알고 예술을 이해하는 일로부터 출발해야 하지 않겠는가.
오 병 종
<여수문화방송PD, 화가 손상기 기념사업회 공동대표
이 글은 거북선 여수에 실린 글임 (2006.11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