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애국 선열을 기려야 하는 이유

김세곤 2007. 3. 1. 08:34

 

 

 

  기고] 애국선열을 기려야 할 이유

  • 김국주 광복회 회장
    입력 : 2007.02.28 22:32 / 수정 : 2007.02.28 22:33
    • 김국주 광복회 회장
    • 개인의 기억에는 한계가 있다. 한 사람이 세상을 떠나면 그의 기억도 사라지기 때문이다. 그러나 집단의 기억은 다르다. 여러 세대를 이어져 내려오는 집단적 기억은 집단의 노력에 따라서는 영원히 이어질 수도, 완전히 소멸할 수도 있다. 바로 여기에 우리가 애국선열(愛國先烈)들을 기리면서 언제까지라도 기억하려는 이유가 있다.

      대한민국이라는 자랑스러운 우리 국가 공동체가 오늘날 굳건히 설 수 있게 한 애국 선열들의 고귀한 희생, 그런 희생을 우리가 되새기고 기억하고 기리지 않는다면, 그분들의 희생은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버리고 말 것이다. 그런 집단적 기억 상실의 결과는 무엇일까? 첫째는 아무도 국가 공동체를 위해 자기를 희생하려 하지 않고 모든 사람들이 사리사욕만을 추구하게 된다는 것이다. 둘째는 이의 당연한 귀결로 공동체의 존립 자체가 힘들어진다는 것이다.

      이 문제는 이념의 좌향좌나 우향우와 상관없이 우리 모두가 함께 고민하고 돌보아야 한다. 일제 강점기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 싸웠던 선열들 가운데는 왼편에 섰던 분도 있고 오른편에 섰던 분도 있다. 지난 세월 우리는 이념과 체제 갈등의 현실 속에서 애국 선열들마저 줄을 세워 구분 짓기도 했지만, 최근에는 그런 편향된 구분에서 벗어나 대승적으로 애국 선열들을 평가하고 기리는 풍토가 확산되고 있어 다행스럽다.

      그러나 우리가 일상적으로 애국 선열들을 기억하고 기리는 문화와 제도적 여건이 충분히 성숙됐는가 하는 문제에 이르면, 낙관할 수만은 없는 게 현실이다. 물론 이 가운데 제도적 여건 측면은 우리 정부 당국의 꾸준한 노력이 있어 왔고, 그 결과 예전에 비해 나아진 것만은 틀림없다. 앞으로도 애국 선열을 기리고 그 후손들을 예우하는 보다 다양하고 내실 있는 제도들이 확충, 시행되어야 할 것이다.

      그렇다면 애국 선열들을 기리는 문화의 측면은 어떠한가? 최근 젊은 세대의 의식 속에서 애국 선열이라는 개념 자체가 점차 옅어져 가고 있다면 기우(杞憂)일까? 제도는 제도를 마련하고 시행하면 되지만, 문화 측면은 제도만으로 해결할 수 없다는 데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국민의 일상 속에서 상시적으로 애국 선열들을 되새기고 기릴 수 있는 자연스러운 계기들이 많아져야 해결할 수 있는 문제라고 본다.

      이와 관련하여 최근 아주 중요하고 큰 계기가 하나 있다. 다름 아니라 새로 발행될 고액권 화폐 디자인에 들어갈 인물 선정 문제다. 광개토대왕, 을지문덕, 신사임당, 정약용, 장영실, 김구, 안중근, 유관순 등 여러 인물이 화폐 인물 후보로 거론된다. 모두 제 나름의 의미와 중요성을 지닌 자랑스러운 우리 역사 인물들이다. 하지만 이 가운데 일제 강점기 우리 민족의 자주독립을 위해 싸운 애국 선열이야말로 화폐 디자인 인물의 1순위 후보가 되어야 마땅하다. 그것은 그 자체로 애국 선열을 기리는 일일 뿐 아니라, 그 분들을 기리는 문화가 보다 널리 확산되고 자리 잡을 수 있는 중요한 계기이기 때문이다.

      역사의 교훈을 망각하는 공동체는 수난의 역사를 되풀이하게 된다. 새로 발행될 화폐가 경제적 의미만이 아니라 역사적 의미를 지닐 수 있는 지름길은 바로 그 도안 인물로 애국 선열을 모시는 것이다. 필리핀의 호세 리잘, 미국의 조지 워싱턴, 대만의 쑨원, 이렇게 자주독립국가 건설을 위해 분투한 인물들이 화폐에 등장하는 까닭을 새삼 일러 무엇 하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