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화 -기대승
매화
기대승
고개 너머 차갑게 피어 있는 매화는
바로 적선 謫仙이라.
고고한 향기와 나그네 자취가
각각 천성을 보전하였네.
어찌하면 달빛 아래서
우리 그윽한 회포를 열고
복희씨가 괘를 긋기 전의
이야기를 해 볼까.
嶺外寒梅是謫仙 영외한매시적선
孤芳羈跡各全天 고방기적각전천
何當月下開幽抱 하당월하개유포
設到羲皇畫卦前 설도희황획괘전
1569년 3월 퇴계 이황은 서울을 떠나면서 고봉 기대승(1527-1572)에게 매화시 8수를 준다. 이 시들을 받고 고봉은 답시를 하나하나 쓴다. 이 시는 그중 제6수이다.
매화는 적선 謫仙이라. 고고한 향기와 나그네 자취가 천성이네. 고봉이 퇴계의 성품을 이렇게 매화에 비유한 것이다. 적선은 죄를 짓고 인간세상으로 쫓겨 내려온 천상의 선인이다. 이 시에 나오는 복희씨는 주역의 8괘를 처음으로 만든 전설적인 인물로서 몸둥이는 뱀이고 얼굴은 사람이며, 소의 목과 호랑이 꼬리가 달렸다고 ‘열자’라는 책에 전한다.
원래 퇴계가 고봉에게 준 시 제6수는 이렇다
매화가 답하다
나는 포선으로부터 환골한 신선이요
그대는 돌아온 학이라 하늘에서 내려왔네.
서로 만나 한번 웃는 것 하늘이 이미 허락했으니
예천의 일 가지고 비교하지 말게나.
이황은 67세 정월에 조정에서 벼슬이 내려져 서울로 올라가게 된다. 그는 예천 까지 갔다가 다시 올린 사직 상소가 윤허되어 도산으로 되돌아온다. 이 때 쓴 매화 시 두수중 하나가 이시이다. 이 시에서 포선은 송나라의 임포 林逋(967~1028)를 말하는 데 그는 서호의 고산에서 결혼도 하지 않고 매화를 아내 삼고 학을 자식처럼 기르고 (매처학자 梅妻鶴子) 살았다 하며 그의 시 “산 동산의 작은 매화(山園小梅)”는 너무나 유명하다.
한편 퇴계 이황과 고봉 기대승이 사단칠정론에 관하여 7년간에 편지를 주고 받았음은 조선 유학사에 널리 알려진 사건이다. 최인호의 소설 “유림” 6권은 퇴계와 고봉의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