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틴 화첩기행 10 -김병종
입력 : 2007.01.14 23:52 / 수정 : 2007.01.14 23:5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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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물과 공기의 도시
졸음과 진흙이 감도는 이 강을 통해서였을까
범선들이 나의 조국을 창건하러 온 것이
…살랑거리며 잦아드는 전원의 저녁한 담배가게가 장미처럼 향기를 흩뿌렸네.
현관들이 있었고 키스를 나누는 연인들이 있었네.
단지 길 건너 보도가 아직 생기지 않았을 뿐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창건이 믿어지지 않네.
이 도시가 내겐 영원한 물과 공기와도 같기에
(보르헤스 -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신화적 창건’ 중)
새처럼 하얀 구름 속을 빠져나온 LAN621편은 명칭 그대로 그 ‘좋은 공기’의 도시에 살강 내려앉는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조용히 소리 내어 불러보면, 문틈 사이로 사라지는 여인의 옷자락처럼 마음을 가만 흔들고는 흩어지는 이름. 사람들이 가보지도 않은 채 동경하게 되는 도시가 이 지구상에는 몇 개쯤 될까. 우리와는 지구의 정반대 편에 있는 이 도시는 언제부터 내 마음 속에 자리 잡아 날 유혹하기 시작했을까.
- ▲대문호 보르헤스의 고향답게 부에노스아이레스에는 오래된 서점도 많고 책 읽는 사람도 많다.
- 에세이사 공항에 내리면서 숨을 깊이 들이쉬어 본다. 과연 하늘은 맑고 공기는 부드럽다. 공항에서 도심까지의 거리는 낡았으되 남루하지 않다. 차창 밖 풍경은 이 대륙에 도착한 이후로 거쳐 온 몇몇 도시들과는 사뭇 다르다. ‘남미의 파리’라는 이름답고 오래된 유럽의 어느 도시에 온 느낌이다. 건물들마다 스페인풍의 외관과 남미의 색채가 묘하게 섞여 있다.
보르헤스의 시를 통해서는 환상과 현실 사이에 가로 놓인 교차로쯤으로, 왕가위의 화면 속에서는 몽환적인 그리움의 장소로, 피아졸라의 반도네온 선율 속에서는 지쳐 쓰러질 때까지 춤추는 자들의 도시로 연상되는 부에노스아이레스. 이 도시는 그토록 많은 이미지들로 인해 내겐 오히려 부윰한 안개 저편의 거리처럼 아스라했다.
시인 로르카, 발레리노 니진스키와 누레예프, 유진 오닐 등 이 도시를 스쳐간 무수한 예술가들은 이 도시의 무엇에 그토록 사로잡혔던 것일까. 무엇보다도 동시대의 세계로부터 스스로를 격리한 채 환상과 미로 사이에서 그것을 비추는 거울에 대한 얘기를 들려주기를 원했던 보르헤스가 지독하게 현실적인 자신의 태생지를 그토록 사랑하고 예찬하게 한 매혹의 정체는 무엇일까.
#2 책과 밤을 동시에 주신 신이여
이미 살아서 20세기 문학의 신화로 남았던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지나친 독서와 유전적 요인이 겹쳐 30대부터 서서히 시력을 잃기 시작해 50을 넘어서면서 눈뜬장님으로 살아야 했지만 그는 자신의 삶 자체를 우주적 아이러니로 긍정한다. 국립도서관장으로 임명된 후 그토록 좋아했던 책으로 둘러싸인 채 단 한 줄의 글도 읽을 수 없던 그. 자신의 처지를 ‘책과 밤을 동시에 주신/ 신의 경이로운 아이러니’라고 말하며 그 시의 제목을 ‘축복의 시’라 이름 지었던가. 이후 오히려 제한된 시각적 체험 속에서 신비로운 연상과 환상의 세계를 펼쳐 보이며 자신만의 독특한 문학세계를 꽃피우게 된다. 보는(見) 세계에서 꿰뚫어보는(觀) 세계로 나아갔다고 할까. 합리와 과학적 사고방식이 주도하던 20세기에 보르헤스는 사람들이 당연하다고 믿는 것들이 인간이 만들어낸 또 하나의 허구일 수도 있다는 깨달음을 제시한다.
- ▲라틴의 파리, 남미의 문화수도-부에노스아이레스는 연중무휴로 탱고공연과 연극공연, 문학 강좌 등이 열려 예술도시를 실감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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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은 흔히 보르헤스를 환상문학의 대가라고 부르지만 나는 오히려 그의 문장에서 노장(老壯)과의 접점을 떠올리게 된다. ‘어제 나는 하나님을 보았고 하나님이 내게 말하는 것을 꿈꾸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 내 말을 듣는 꿈을 꾼 후 하나님이 꿈꾸는 것을 꿈꾸었다’는 문장에서 나비 꿈을 꾼 후에 내가 나비인가 나비가 나인가 묻는 장자가 떠오르는 건 너무 자연스럽지 않은가. 어둠 속에서 삶의 미궁을 헤매면서 그는 마음의 나라 도처에서 눈뜬 자들이 보지 못하는 심연을 발견한다.
#3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 위에서
우리나라에선 소설가로 알려져 있지만 이곳에서 보르헤스는 시인으로 철학자로서도 사랑받고 있다. 이 도시의 사람들은 그에 대해 이웃사람처럼 얘기하고 그의 시를 즐겨 외운다. 왜 아니겠는가. 이 거리를 그토록 사랑한 그는 시력을 잃은 후에도 날마다 몇 시간씩 지팡이에 의지하여 산책했고 그를 알아본 사람들은 길모퉁이에 서 있는 그를 만나면 길을 찾을 수 있도록 도와주곤 했다 한다. 그의 첫 시집은 부에노스아이레스에 대한 사랑이 듬뿍 담긴 시편들로 가득하다.
그가 살았던 마이푸가 994번지에는 그의 산책로를 표시한 지도가 붙어 있다. 산책을 하되 볼 수 없었던 이 거리에서 그는 무엇을 느꼈을까. 거리의 소란, 흘러나오는 음식 냄새, 사람들의 목소리, 무엇보다도 ‘좋은 공기’, 생의 기운, 그리고…. 여기까지 생각하다 세상을 늘 색채로 읽어내야 하는 나는 그만 막막해진다.
빛을 잃는다면 그 모든 것이 무슨 소용이 있단 말인가. 소리를 잃은 채 교향곡을 작곡해냈던 베토벤처럼, 시력을 잃은 채 20세기 문학의 스승이 된 보르헤스. 예술은 왜 때로 유인하기에 불가능해 보이는 일들을 인간으로 하여금 이루어내게 하는 걸까.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은 어디론가 분주히 걸어가는데 나는 길모퉁이에 멈추어 서서 낯선 거리의 풍경을 두 눈에 담는다. ‘끝없이 두 갈래로 갈라지는 길들이 있는 정원’ 어디쯤에서 길을 잃은 사람처럼. 저 모퉁이를 돌아 왼쪽 길로 들어서면 돌아올 수 없는 미로(迷路)속으로 들어가는 건 아닐까.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부딪히는 삶의 이 막막한 불가해여!
갑자기 다디단 빵 한 조각과 독약처럼 진한 커피 한 잔의 생각이 간절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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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 (Jorge Luis Borges, 1899-1986·사진)
부에노스아이레스 출생. 시인, 소설가. 20세기 라틴 문학은 물론이고 세계문학의 스승으로 불리는 환상문학의 대가. 작품으로는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열기’ ‘불한당들의 세계사’ ‘픽션들’ ‘알렙’ 등이 있다. 그의 작품들은 문학뿐만 아니라 철학, 사상, 영화 등 다방면에 영향을 끼쳤다. 시력을 잃은 채 국립도서관장을 지냈으며 87세에 자신의 비서였던 일본계여성 고다마와 결혼하나 두 달 후 지병으로 세상을 떠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