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리브 화첩기행
화첩기행] 카리브에 별빛들은 수만개의 치자 꽃송이로
호텔 나시오날. 작지만 고풍스러운 호텔의 벽을 밤의 카리브가 부드럽게 어루만진다. 만조일까, 조수(潮水)는 테라스 발치를 핥아대고 하늘엔 툭툭 떨어져 내릴 듯한 별의 무리들. 수면 위에 내려앉은 그 별빛들은 향기롭게 흔들리는 수만 개 치자꽃송이가 된다. 어둠 속의 침향. 여행자의 고적감은 달콤하면서도 쌉쌀하다.
치자꽃 두 송이를 그대에게 주었네
내 키스를 담아서
꽃들은 당신 곁에서 내 대신 사랑을 말해줄 거요….
|
우리는 음악소리가 흘러나오는 방 앞에서 걸음을 멈추었다. 리허설룸 문을 열고 불쑥 들어선 나를 사람들은 놀란 얼굴로 바라보았다. 휴, 당신들을 보려고 멀리 한국의 서울에서 온 사람이라고 너스레를 떨었더니 일제히 탄성을 지르며 얼싸안을 듯 다정하게 맞아준다. 아마디토 발데스, 우고 가르송, 그리고바실리오 레삐라도. 이들이 보여주는 친밀감이라니. 그러잖아도 어제 외국에서 돌아와 오늘 공연을 할까 말까 했다며 10년 지기처럼 대해준다. 어깨동무를 하고 어린아이들처럼 천진한 노인들과 사진을 찍었다. 70 넘은 여가수는 나를 사정없이 끌어안고는 빨간 입술로 키스를 퍼부어댄다.
객석으로 나와 콤파이 세군도의 청동조각상 가까이에 자리를 잡고 앉는데 조명을 받으며 그들이 걸어 나온다. 어느새 다시 새빨갛게 칠한 입술로 내게 손을 흔들어 활짝 웃어 보이며.
#2 노래는 새 되어 날아가고
‘스무 해’로 시작된 노래는 부드러운 ‘볼레로’로 이어진다. 중얼중얼 이리 뛰고 저리 뛰는 어린 댄스가수들에게선 결코 느낄 수 없는 질감과 두터움과 여유가 엮어진 노랫소리는 둥근 공연장을 뚫고 밤하늘로 퍼져나간다.
알도의 말처럼 이제 아바나엔 주요멤버가 빠져버린 부에나비스타를 능가하는 기량의 팀들이 많을지 모르겠다. 그러나 많은 것을 겪고 많은 것들을 끌어안은 채 느리게 흘러가는 도저한 강물의 하구처럼, 저들의 목소리에는 듣는 사람을 위로하는 치유의 힘이 있다. 온통 결핍뿐이었던 지난 삶에서 흘렸던 눈물의 기억, 비밀스러웠던 열정, 아픈 사랑의 추억, 어리석음에의 회한, 돌이킬 수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청춘은 아름답다는 뒤늦은 깨달음을 그들의 목소리는 일깨워준다. 더러는 아프리카노예의 노동요 같기도 하고 장엄미사의 성가곡 같기도 하다. 듣는 이의 영혼을 울리는 건 꼭 손바닥으로 두드리는 저 마라카스의 리듬 때문만은 아닌것이다.
|
밤이 깊어가면서 실내의 공기는 끈적끈적해진다. 노래와 연주는 서로의 몸 속으로 섞여 들어가 축축하고 관능적인 기운을 객석으로 뿜어낸다.
불이야 불, 난 불타고 있어.
불길이 날 데려가
음악을 계속하고 싶은데.
자지러질 듯 빠르게 ‘칸델라’가 이어질 때 서른이나 되었을까. 여자 하나가 무대 앞으로 나오더니 흐르는 노래에 몸을 슬쩍 올려놓듯 춤을 추기 시작한다. 등을 온통 드러낸 채 팔뚝까지 오는 검은 레이스장갑을 낀 여자는 몸매도 예사롭지 않았지만 춤 솜씨는 가히 프로의 경지였다. 노래가 끝나자 제 자리로 가서 앉는데 청년 하나가 다가가더니 무릎을 굽히고 손을 내민다. 여자는 잠시 머뭇거리다 마지못한 듯 다시 나온다.
우레 같은 박수.
다시 달콤해진 노래 속에서 젊은 두 남녀는 카리브해의 물고기처럼 유영한다. 두 육체는 한 순간도 우아함을 잃지 않고 서로 엮이고 풀어지며 만나고 헤어지기를 반복한다. 노래가 끝나자 여자는 스커트 끝을 살짝 들어올려 인사를 하고 다시 환호와 박수. 밤이 깊어갈수록 공연장은 객석과 무대가 따로 없이 한 호흡으로 달아오른다. 클래식한 분위기를 좋아하는 관객이라면 상스럽다고 이마를 찌푸릴지도 모르지만 여행자는 때로 불온함에 더 이끌리는 법이다. 공연이 끝나자 마치 내가 한바탕 춤이라도 춘 듯 나른한 여운이 몸을 휘감는다. 언젠가 내가 다시 여기를 찾아온다면 저들의 음악을 이곳에서 또 만날 수 있을까. 그때까지 우고는 저 무대를 지키고 있을까. 다시 올 수는, 있는 것일까.
|
숙소로 돌아오는 길, 어둑한 거리에서 저 혼자 환하게 불을 밝힌 주유소 풍경이 유독 싸늘해 보인다. 삶의 적나라한 신산(辛酸)이 라틴적인 낙천주의와 버무려진 올드 아바나의 거리를, 유네스코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했다. 언제 무너질지 모르는 벽을 구할 수 있는 각색페인트로 칠하다 보니 설치미술처럼 보이는 그 아슬아슬한 아름다움을, 그러나 이곳에 사는 이 거리의 주민들도 정녕 그대로 보존되길 원하는 걸까.
영화 속의 한 장면이 떠오른다. 페인트로 ‘우리에겐 꿈이 있다’고 써놓았던 벽은 어디쯤 있을까. 걸음을 멈추고 나는 거리를 천천히 둘러보았다. 다큐 영화 속의 장면과 실제로 내가 본 풍경들이 머릿속에서 뒤섞인다. 풍경의 이면으로 들어와 버린 듯 나는 주위를 둘러보았다. 이 거리의 바깥으로, 삶의 표면으로 걸어 나갈 수 있기는 할까. 이제 돌아가면 어떤 게 영화의 한 장면이었는지, 내가 실제로 걸어본 아바나의 거리인지, 구별할 수 없을 것 같다. 눈자위가 뜨뜻해온다. 가슴 밑바닥에 고이는 이 쓸쓸함과 슬픔의 정서는 밤의 아바나 공항에 내릴 때만 해도 예감하지 못했던 것이다.